붉은 머리카락 이야기, RED: A History of the Redhead 과학 Science

한국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아시아인들은 검은색 혹은 갈색빛이 감도는 검은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지요.

물론, 아프리카계 사람들과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대부분 흑발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머리카락은 대부분 검은색입니다.

인구 대비 굉장히 균일한 특징이지요. 


하지만 유럽인이나 북미 백인들의 머리카락 색을 보면 우리에 비해 놀랍도록 총천연색입니다.

지금 저는 미국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는데, 단적으로 여기 연구실 구성원들만 봐도 머리카락 색깔이 다 다릅니다. 

PI는 완전 노란 금발(blond), 캘리포니아에서 온 친구는 신기하게도 일부러 염색한 것처럼 어두운 색이 섞인 금발(ash blond),
 
시카고에서 온 친구는 물빠진 금발, 메인주에서 온 아저씨는 은발과 금발의 중간....

캐나다에서 온 친구는 흑갈색(brunette)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고,

포르투갈에서 온 친구는 저보다 더 진한 흑발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머리카락 색깔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붉은색 머리카락(red hair)일 것입니다.

(사실 '붉다'고 해서 '빨강'이라기 보다는....밝은 주황(strawberry blond), 붉은 포도주색, 검붉은색(auburn hair) 등등 대표적인 몇몇 변이가 있으나 여기선 통칭해 '붉다'라고 하지요.) 

제 연구실이 있는 층에도 붉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친구가 딱 한 명 있는데, 지나칠 때마다 시선을 한 두 번 슬쩍 더 주게 됩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굉장히 인위적인 느낌도 줍니다. 낯설지요.

'붉은색'이 가지는 여러가지 상징과 통념이 '머리카락'이라는 '신체의 일부'에 표현되는 것에대한 오묘한 거부감과 호기심일 겁니다.


근데 붉은 머리카락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호기심, 그리고 일종의 편견은 서구 사회에서도 꽤나 좋은 이야기 거리인가 봅니다.

얼마전 동네 서점에 갔더니 '빨간 머리의 역사 A History of the Redhead'라는 책이 있어 좀 들춰봤습니다. 

이들에게도 붉은 머리카락은 오랫동안 일반적이지 않은 특별한 대상으로 여겨진듯 합니다.



붉은 머리카락의 생물학적 원인

형질이 있으니 유전적 요인이 있을테지요. 그럼 붉은 머리카락의 유전적인 원인은 무엇일까요?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MC1R(melanocortin 1 receptor) 유전자라고 하는군요. 

우리 몸에는 멜라닌 색소(pigment melanin)를 만드는 멜라노사이트(melanocyte)라는 세포가 있습니다.

이 세포는 기본적으로 노랗거나 붉은 색소(phaeumelanin)를 만들어내는데,

MC1R 유전자가 발현시키는 단백질이 멜라노사이트 세포 표면에 발현해 세포가 갈색이나 검은 색소(eumelanin)를 만들도록 조절하지요.

근데 MC1R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이 기능에 이상이 생겨 붉은 색소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MC1R의 변이 정도에 따라 붉은 색소의 양도 다양하게 조절되어 여러 농도의 붉은 머리카락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지요.  

아울러 붉은 머리카락은 열성(recessive) 표현형이라 부모 둘 다 금발이라도 자녀에게 붉은 머리카락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인류학적으로 보면 붉은 머리카락이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 흔적으로 보여진다는 일부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인간의 유전적 특성의 흐름은 여러가지 역사적, 사회적 복합성이 관여되고 광범위한 샘플 획득이 까다롭기때문에 쉽지 않은 연구입니다만, 

인간 유전체 연구가 계속 발전되고 있기 때문에 붉은 머리카락의 유례와 다른 형질과의 연관성 연구도 더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붉은 머리카락의 유전적 가계도 조사는 유럽에서 오랫동안 이루어져 왔습니다. 

유럽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국가별로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들의 지역적인 경계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대략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쪽에 5~10 % 비율로 상대적으로 다수 분포하고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남부, 이탈리아를 비롯한 중남부 유럽쪽에 5 % 미만의 비율로 분포하고 있습니다.

이 기준은 대략 북위 45도를 기준으로 경계를 나눈 것인데 이 가상의 선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북위 45도 북쪽은 전통적으로 북유럽 문화로 버터를 기반으로하는 요리 문화권이라고도 하고,

45도 이남은 올리브 오일 요리를 기반으로하는 남유럽 문화로 구분지어도 무방합니다.

자연선택적으로도 살펴보면, 북위 45도 이북에서는 햇살이 약해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창백한 피부의 형질이 생존에 유리했으리라는 설명도 가능합니다.

아무튼 이 붉은 머리카락 형질은 셀틱-게르만 유례의 형질(Celto-Germanic trait)이라는 설이 가장 널리 인정받고 있지요.

고대 그리스 로마 사람들이 셀틱-게르만 민족을 접하고 그들을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들이라 기록한 정황도 있습니다.


동유럽쪽에서는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모스크바 동쪽 중앙아시아 쪽으로 오면 다시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들이 확연하게 증가하는 재밌는 현상을 보입니다.

중국의 신장 위구르 지역에도 머리카락이 붉은 소수민족이 있는데 이들은 아마도 과거 동서 교역을 통해 발생한 혼혈의 흔적으로 보입니다. 



붉은 머리카락에 대한 서구사회의 통념

붉은 머리카락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문득 영화 한 편이 떠올랐습니다.

벤 위쇼 Ben Whishaw가 열연했던 '향수 Perfume: The story of a murderer (2006)'라는 영화를 아실겁니다.

붉은 빛이 강렬한 영화 포스터가 인상적이지요. 유명한 영화이니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지금 이 영화를 다시 곱씹어보니 붉은 머리카락이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가 영화적 장치로 세밀하게 표현된듯 합니다. 


영화 속에서 강렬한 장면을 만들어낸 그르누이의 첫번째 희생자는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입니다. 

그리고.....


그르누이의 마지막 희생자 역시 붉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에 영화를 봤을 때는 이 두 여인들의 머리카락 색이 붉은색이었다는 것에 크게 신경두지 않았지요.

근데 이야기의 큰 흐름을 만들어내는 두 명의 등장인물을 왜 굳이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으로 보여주었을까요?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 비뚤어진 욕망의 대상으로 붉은 머리카락을 상징적으로 차용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책을 보다 보니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좀 더 복잡하고 이중적인 면이 있습니다.

최근 미드 '왕좌의 게임'에서 신묘한 분위기의 '붉은 여사제'가 등장 하는데, 붉은 머리카락에 대한 서구 사회의 복잡한 시각이 바로 그 캐릭터의 다양한 모습으로 잘 표현된 것 같습니다. 

드라마에서 '붉은 여사제'는 종교적인 고결함, 영적인 신비를 지니고 있는 동시에 

마녀와 같은 사악함과 공포스러움, 때로는 육체적인 관능까지, 복잡한 이미지를 드러냅니다. 

어째서 사뭇 함께할 수 없을 것 같은 이질적인 이미지가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에게 동시에 투영 되었을까요?


그에 대한 다양한 가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종교적 배경과 역사적 사실의 배경이 흥미롭습니다.

성서에 등장하는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는 많은 서양 회화에서 붉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여인으로 묘사됩니다.

'막달레나'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와 기술이 기독교 내에서 다양한 이유는 기독교 내에서 그녀의 위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통일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성녀로서의 '막달레나'와 자연인 '막달레나'의 이중적인 이미지가 혼재되게 됩니다. 

'막달레나'를 통해 붉은 머리카락의 여성은 욕망의 대상임과 동시에 '성스러움', '독실함'이 투영된 대상으로 대중에게 인식되게 된것이지요.

성서에는 '막달레나'의 머리카락 색깔은 정확히 언급되어 있지 않다고 하는데, 후대의 사람들이 '막달레나'의 머리카락 색을 일부러 '붉은 색'으로 만들었을 수도 있어 보입니다. 

아무튼 대중의 심리와 종교의 상징성이 결합해 어찌보면 이중적인 잣대가 생성된 것이지요.


그리고 또다른 역사적 사실이 붉은 머리카락을 유명하게 만듭니다. 

바로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튜더(Tudor) 왕조의 마지막 왕이지요.

그녀가 바로 튜더 왕조의 상징인 'Red-gold hair'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여왕입니다. 

16세기 유럽의 변방 이었던 잉글랜드를 변화시켜 황금기로 나아가게한 군주입니다. 

훌륭한 치적과 평생 독신으로 지낸 여왕의 행적이 더해져 '고결함', '순수함', '강인함'의 상징이 되었지요.

이후 영국의 세력 확산을 통해 여왕이 가졌던 붉은 머리카락의 상징이 서구 사회에 뿌리내리게 된 계기도 있는듯 합니다.  


그럼 붉은 머리카락의 남자는?


물론 붉은 머리카락의 남성에 대한 고정관념도 존재합니다. '포악하다', '잔인하다', '야만스럽다' 등등. 

아마 과거 역사적으로 스칸디나비아 반도 바이킹의 행적들이 이러한 생각을 많이 퍼뜨렸을 것이고,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유대인에 의해 '야박하다', '이기적이다', '야비하다' 등과 같은 이미지가 또 덧씌워졌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바로 그 붉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지요.

이처럼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남성들에 대한 사회적인 이미지도 부정적인 것이 대부분이지만 여성에 대한 그것만큼 드러나보이진 않습니다. 복잡하지도 않구요.

붉은 머리카락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은 여성에 대한 것이 압도적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남성들보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편견이 생성되고 대중들에게 퍼져나가기 쉬웠을테지요.  


기타 참고

http://www.eupedia.com/

https://en.wikipedia.org/wiki/Melanocortin_1_receptor

https://sucheternaldelight.wordpress.com/2010/06/25/where-did-the-tudor-red-gold-hair-come-from/






덧글

  • 이글루스 알리미 2017/11/16 08:21 # 답글

    안녕하세요, 이글루스입니다.

    회원님의 소중한 포스팅이 11월 16일 줌(http://zum.com) 메인의 [허브줌 컬처] 영역에 게재되었습니다.

    줌 메인 게재를 축하드리며, 게재된 회원님의 포스팅을 확인해 보세요.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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